GJCU 생활수기 공모전

장애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미래의 나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김성희 (사회복지학과)

사회복지실습 마감일을 하루 앞두고 난 다급히 아는 지인이 오래전 소개시켜준 지역사회 정신재활센 터를 방문하게 되었다. 하는 일이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라 사회복지실습 역시 지역이동센터로 가고 싶었지만 직업특성상 시간이 맞지 않다보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정신재활센터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체구가 자그마하고 인상이 온화해 보이시는 남자 원장님께서는 실습기관의뢰서를 흔쾌히 작성 해주시며 반겨주셨고 꺼림칙하게 여겼던 4개월여 간의 실습은 그동안 삶을 바라보던 나의 모든 생각들을 전환시키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그곳의 정신 장애인들은 모두 정신병원에서 길게는 그들의 반생애를 보내었으며 짧게는 5년 내지 6년 동안 병상생활을 견디어낸, 겉으로 보면 신체적으로 모두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들과의 짧은 대화로는 장애를 식 별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정신재활센터는 정신 장애인들에게 직업 재활을 시키는 곳이기에 입소정신재활시설보단 더 욱 희망적이었으므로 그곳 회원들의 표정 또한 한결 밝아 보였을 것이다. 나의 주된 실습과정은 그들의 사회적응훈련을 위한 일련의 프로그램 수행과정으로 그들과 함께 등산을 하고, 영화감상을 비롯한 다양한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여 그들로 하여금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비장애인들 속에서 자신감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기 위한 서포터즈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신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은 그렇다 치고 정신이 나가 사회적으로 미쳤다는 말을 듣는 정신병자들과 함께 내가 과연 짧은 기간이라도 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너무도 두려웠다. 그들은 모두 정신증상에 따른 약을 복용하고 있었으며 다양한 정신병적 증상을 수반하고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실습도중 어떠한 사고도 예측할 수 없다.

광교산 등반 시 산주변의 호수를 거닐고 있는 실습생을 물속으로 밀어 넣는 일은 수시로 일어나며, 만약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끝까지 전화를 걸기 때문에 절대로 전화번호는 주고받지 말라는 원장님의 주의사항은 ‘아 내가 이거 정말 못 올 곳을 왔나보다. 첫날 실습만 끝내고 적당히 둘러대고 한 학기를 더 다니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곳으로 실습지를 알아보아야겠다.’ 라는 나의 이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삼성전자 사원들과 함께 한다는 산악회, 실습 첫 날의 모임장소로 향하던 나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모두 내게 인사를 하며 다가왔지만 누가 비장애인이고 누가 정신 장애인인지 구별이 안 가 난 어리둥절하기만 했고 겉모습이 약간 어눌해 보이는 사람들은 다 정신 장애인 같다는 생각에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였다.

나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장님은 실습생들에게 사탕봉지를 건네주시면서 회원들(그곳에선 센터를 이용하는 모든 정신 장애인에게 회원들이라 칭함)에게 사탕을 나누어주라 하셨고, 회원들의 얼굴을 모르는 상태에서 난 모자라 보이는 사람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그날 등산을 하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날 나에게 사탕을 받은 사람들은 정신재활센터의 회원들보다는 다수가 이 센터와는 상관없이 등반을 위해 광교산을 찾은 비장애인들이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처음 보는 내가 웃음으로 건네주는 사탕을 받으며 날 어떻게 생각했을까?’ 정신 장애인들과 등산을 하며 비장애인들에게 보였던 내 자신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생각하자 순간순간 웃음이 나왔다. 또 실습 첫 날엔 쉬운 코스로 분명 산책길을 걷는다 해놓고 사람들이 아무도 오른 흔적이 없는 눈 쌓인 언덕길은 왜 오르는 건지 센터 원장님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져야 할 순간 난 사탕사건 때문에 웃음을 멈출 수 없었고, 넘어져도 웃고 있는 나의 모습이 우스운 듯 모두들 웃고 또 웃는 속에서 어느새 우린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미끄러지는 나의 손을 잡아주는 그들이었는데...... 나의 옷에 묻은 눈과 흙덩이를 맨손으로 털어주는 그들이었는데..... 괜찮으냐며, 떨어져나간 귀걸이를 찾아준다며 나뭇가지로 산 바닥을 헤쳐 주던 그들이었는데...... 왜 산책길로 걷지 않고 힘들게 언덕으로 다니느냐며 원장님을 향해 푸념을 늘어놓던 그들이었는데...... 난 왜 마치 우리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그들과의 만남을 두려워했었는지 그들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땀을 흘리며 국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고 만족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에서 난 진정 소박하고 순수한 삶의 모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느낄 수 있었다. 호숫가에 혹시 날 밀어 넣진 않을까, 돌발적 행동으로 날 놀라게 하진 않을까, 전전긍긍 대며 걸었던 나의 행동들은 그동안 내가 정신 장애인에 대해 얼마나 많은 편견들을 가지고 살았는지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예가 되었다.

실제로 내가 실습과정 중에 만난 정신 장애인들은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비장애인들과의 차이를 굳이 설명하자면, 그들은 정말 운이 나쁘게도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두뇌를 다쳤으며, 어느 날 갑자기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 정신적으로 도저히 감당해내지 못했으며,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그 충격에 정신줄을 놓고 회복이 더딘 상태이며, 현실과는 동떨어진 행동을 하다 운이 없게 가족이나 주위사람들 눈에 띄어 병원으로 실려 가게 되었으며, 정신병원에서 먹지 않아도 될 약들을 이기적인 의료행위에 의해 억지로 투여함으로써 그 후유증에 더 큰 정신병을 얻은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도 슬픈 것을 보면 눈물을 흘릴 줄 알고 웃긴 것을 보면 웃을 줄 알며, 도와 달라 얘기하면 흔쾌히 자신의 힘을 빌려줄 줄 알며, 통하면 사랑도 할 수 있는 그런 우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생활대책의 일부로 ‘노느니 사회복지사 자격증이나 따놓아야겠다’고 학교에 입학했던 나에게 ‘이것이 또 이렇게 내 삶에 연결이 되는구나.’ 싶을 정도의 목적의식이 부여되기 시작했다.

너무나 많은 사회복지 분야에서 흔하디흔한 사회복지사는 이제 살아남기 힘들다. 시대에 맞는 전문적인 능력을 가진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서는 한 분야에 대한 꾸준한 자기계발이 필요하며, 이 나이에 뭐가 가능하겠냐는 푸념에도 어쩌면 사회복지사의 가장 중요한 자세는 진심으로 남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삶의 경험을 두루 갖춘 사람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며 마음을 잡아주신 센터 원장님의 말씀은 사회복지사에 뜻을 두고 있거나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은 들어야 할 진심어린 충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습 전 들었던 정신 장애인에 대해 우려해야할 일들 역시, 어쩌면 그들이 아니라 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것을 경험하며 정신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우리들이 스스로에게 우려해야할 일이 아니었을까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러기에, “장애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미래의 나의 모습이 될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처럼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는 예고 없이 온다는 것,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고, 이 때문에라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시각이나 정부의 시책 또한 점점 바뀌고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정신재활직업센터의 회원들은 새로운 직업을 구하기 위해 상담을 받고 구직란을 들여다보기도 할 것이며, 사회 속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무리 없이 살아가기 위해, 비장애인들과 ‘우리’가 되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마치 비장애인들이 아침에 눈뜨며 하루의 일과를 머릿속에 그려보고 자신에게 파이팅을 외치듯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