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생활수기 공모전

내 이름 앞에 나는?

이하은 (복지행정학과)

가을바람이 싸늘하다.

옷깃을 여미며 출근하는 길가에 은행잎이 떨어진다. 한옥 집 울타리 곁에 있는 감나무에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모습을 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을 하고,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상큼하게 시작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여기 어려운 사람이 있어요. 도와주세요. 얼른 올라오셔서 한 번 만나주세요.”

다급한 전화 목소리에 커피도 마시지 못하고 상황이 어려운 분인가 생각하며 병실로 올라가보니, 간병인이 환자 앞으로 나를 안내해주었다. 다가가서 바라본 환자는 보기에도 안쓰러워보였다. 환자는 본인을 돌보아줄 사람이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환자는 가족이 있었지만 도움을 받기 어려운 처지였다. 명찰을 보니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간병을 부탁하는 분, 진료비 부담에 대해 상담하는 분 등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가진 분들을 만나는 일이 나의 업무이다.

요즘 경제가 어려워서, 가족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하면 가장 큰 걱정이 간병이고, 그 다음은 진료비이다. 현재 재직 중인 병원에서는 남부자활후견기관과 협력하여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환자들을 상대로 하루 8시간의 간병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또 무료병동 선교센터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24시간 간병을 지원하고 있다.

눈물을 흘리며 돌봐줄 사람이 없는 어려움을 호소하던 그 환자는 수술을 여러 번 해야 하는 상황인데 당뇨로 인해 회복이 어려운데다가 암까지 발병하여 손을 쓸 수 없는 말기환자였다. 환자는 우선 간병에 대한 도움을 청했다. 아들이 가족 중 혼자 간병을 하는데, 일을 하고 저녁 늦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병원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우선 환자를 진정시키고 퇴근 후에 아들과 면담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저녁 늦게 만날 줄 알았던 그 환자의 아들이 이른 오후에 찾아왔다. 아들에게 시간이 괜찮았는지 물으니 간호사실에서 간병인이 없으면 안 된다고 연락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왔다고 말을 했다. 아들과 면담을 하니 환자의 상황이 더욱더 안타까웠다. 남편은 알콜중독자로 가정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하는 상황에 병원에 오더라도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고, 아들도 신용불량자가 되어 직장을 가지지 못한 상황이어서 가족의 수입은 정부지원금 40여만원이 전부였다. 결국 그 환자는 지병인 당뇨료 인한 합병증에 장협착까지 겹쳐져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를 받던 중 눈을 감았다.

나의 일상적인 업무는 이렇게 어려운 분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주는 것인데, 가족들이 마음을 모아 아픈 사람을 보듬고 돌보아서 따뜻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지금처럼 상처받고 무너진 가족을 마주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스스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가정인들 문제가 없을 수는 없지만, 문제를 함께 이겨내기 위해 짐을 나누어 지는 가족의 사랑과 결속이 시간이 지나며 약해지는 현실을 보면서, 좀 더 인간다운 삶과 깊은 가치를 공유하는 모습을 꿈꾼다.

병원의 업무는 환자의 치료가 중점이지만, 환자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 환경과의 원활한 소통에도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는 환자의 병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치료라는 하나의 관점에서 보면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내 자신이 이 일을 하면서 ‘내 자신은 얼마나 건강한가.’ 점검하면서, 그 안에서 내 자신을 찾는 마음이 더 큰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스스로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정말 잘 살았는가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태까지 살아온 삶에 대해 나는 내 이름 앞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열고 닫는다.